
에이치이공일 SHIFT
당신을 놀라게 할 비누 이야기
칼럼
에이치이공일 <SHIFT>
당신을 놀라게 할 비누 이야기

얼마 전 국내 소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가 잠시 공중화장실에 들렸어요. 근데 화장실을 나오면서 손을 씻으려고 보니 세정액 대신에 벽홀더에 고정된 비누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누가 사용했던 것인지 아직 물기가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까지 붙어 있어서 사용하기가 여간 내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이런 상황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어 인터넷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간 것을 본 기억이 났어요. ‘그냥 사용하겠다’라는 의견과 ‘불쾌해서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오갔었습니다. 결국 전문가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기 이르렀는데요. 습한 환경에서는 비누에서도 세균이 번식할 수는 있지만, 30초 이상 손을 씻는다면 손의 때와 함께 제거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라도 열심히 비누칠을 해서 손을 씻었는데요.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손 씻기를 게을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다시 열심히 손을 씻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코로나19 때문이었죠. 아마도 한국인 모두가, 아니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요?
세탁비누와 공업용 비누를 제외하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비누만 보아도 그 종류가 정말 많죠. 비누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입니다. 비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같이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비누는 선사 시대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고기를 불에 익힐 때는 기름이 떨어지죠. 그런데 장작불에 떨어진 기름은 알칼리 성분의 재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미끄러운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피부나 의복에 묻은 때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어렵지 않게 알아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비누도 등장합니다. 동물성 기름, 또는 식물성 기름과 알칼리 성분을 배합하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초적인 비누 제조법인데요. 기원전 2800년경 고대 바빌론의 기록에서 이러한 비누 제조법에 대한 첫 언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후 기원전 2500년경 수메르의 기록과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파피루스를 통해서도 비누에 관한 지식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는 시기에 비누를 뜻하는 영어 ‘soap’의 어원이 등장하는데요. 고대 로마어 ‘soap’은 라틴어 ‘sapo’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동물 기름’을 뜻했습니다. 동물 기름을 뜻하는 단어가 아예 비누라는 뜻으로 정착한 것이죠. 다만, 널리 알려진 바와 달리 로마인들은 비누는 주로 의류를 세탁하는 용도로만 사용했고, 피부의 때를 벗겨낼 때는 기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도 비누는 고체가 아닌 오늘날 손소독제와 유사한 겔(gel) 형태였다고 해요. 고체 비누는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에 속하는 9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발명되는데요. 올리브유와 알칼리 성분을 혼합하여 끌이다가, 끝에 월계수 기름을 더한 뒤 식히고 굳혀서 고체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아랍인들이 만든 고체 비누는 향까지 좋아서, 외형만 본다면 거의 오늘날의 비누와 유사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비누가 세안용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고,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서는 비누 제조업이 발달하기도 합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천연재료로 만든 친환경 비누인 ‘알레포 비누(Aleppo soap)’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는 아랍의 예전 고체 비누 제조법을 재현한 뒤, 당시 비누 제조의 중심이었던 시리아의 알레포 지역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슬람 문명의 고체 비누 제조법은 아랍을 침공했다가 돌아간 십자군에 의해 유럽에도 전파되는데요. 그때까지도 주로 동물성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던 유럽인들도 이제는 올리브유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누 산업의 중심지를 바꾸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올리브 농장이 밀집된 프랑스의 마르세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나폴리, 그리고 스페인의 카스티야 등 지중해 지역의 도시들이 비누 생산지로 부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고급 비누에 국한된 것으로, 서민이나 유럽의 북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동물성 기름으로 만든 저품질의 비누를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반면 동북아에서는 19세기가 되기까지 동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물성 기름을 얻기 쉬운 목축업 대신 동양에서는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인데요. 고대 중국에서 식물성 기름으로 비누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 조상은 비누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재를 활용했는데요. 나무를 태운 재에 물을 부은 뒤 걸러낸 잿물을 세탁, 그리고 세안을 위해서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시대부터 세탁용과 세안용을 구분하는데요. 이때부터 잿물은 세탁용으로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피부의 때를 벗겨내는 용도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쌀뜨물, 또는 녹두나 콩 등 곡류를 곱게 간 조두 등을 사용했습니다. 16세기 후반에 한글로 작성된 편지에 비누의 어원인 ‘비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비노는 조두의 다른 말입니다. 네, 비누는 순우리말입니다.
현대식 비누를 만든 우리의 역사는 무척 짧은 편인데요. 세탁용인 빨랫비누를 처음 만든 것이 1947년의 일이고, 빨랫비누가 성공한 이후인 1956년이 되어서야 세안용 비누가 첫선을 보입니다. 물론 이제는 제조법과 성분, 용도와 향 등에 따라서 정말 많은 종류의 비누를 생산하고 있죠. 다만, 한국인의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핸드워시, 바디워시, 클렌징폼 등 대체제가 늘어나면서, 비누의 생산량은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누의 인기가 조금 반등하기도 했는데요.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나 세분화된 개인 취향을 반영하여 친환경 비누나 수제 비누 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죠. 여러분은 오늘 샤워할 때 어떤 비누를 사용하셨나요? 비누 대신에 다른 것을 사용하셨다면, 오랜만에 마트에 가서 직접 비누 하나 골라보시는 건 어떨까요? 손바닥만한 비누에 인류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