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에이치이공일 <SHIFT>

거울 속의 나는 진짜 내 모습일까?

디즈니는 최근 예전 애니메이션들의 실사 영화 제작을 이어가고 있죠. 창작 콘텐츠 발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최근 CGI 기술이 크게 발전한 덕도 큽니다. 지난 3월에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많은 관심과 걱정을 동시에 모았던 <백설공주(Snow White, 2025)>가 개봉했는데요. 안타깝게도 흥행면에서는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백설공주>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과 비판이 있었지만, 디즈니가 다시 한번 ‘백설공주’라는 소재로 돌아간 것에 대해서는 비난만은 할 수 없는데요. 유럽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독일의 그림 형제(Brüder Grimm)가 1812년에 책으로 발간한 이후로, ‘백설공주(Schneewittchen)’는 영화, 연극, 오페라, TV, 애니메이션, 만화 등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매체의 수많은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전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생명력은 강인하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가치관을 여러 상징과 다층의 구조에 담은 명작은 곱씹을수록 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동화로만 보였던 이야기가, 성인이 되고 나니 전혀 새롭게 읽혔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백설공주」에서 여왕의 ‘마법의 거울’은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죠. 이와 같은 설정에는 우리가 거울을 이해하는 직관적인 해석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흔히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유하는 사물에는 거울과 사진이 있죠.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더 이상 사진은 신뢰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달리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과 상징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 기술인 사진과 달리 거울이 우리와 함께한 역사는 상당히 긴데요. 오래된 중국의 전설에도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 등장합니다. 전설 속 황제는 이 거울로 신하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간신과 충신을 구분했다고 해요. 신하들에게는 황제보다 무서운 거울이었을 것 같네요.

황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들고 있어도, 또는 보는 이가 없어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두려울 때가 있죠. 거짓 없는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서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거울을 부착해 두기도 하잖아요.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청렴한 관리로 유명한 중국 송나라의 포청천도 비슷한 목적으로 거울을 활용했어요. 자신이 죽은 후 부패한 관리들이 다시 백성들을 괴롭힐 것을 우려한 포청천은 사후 대책으로 거울을 높이 걸어둡니다. 직역하면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고 말하는 사자성어 ‘명경고현(明鏡高懸)’은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판결이 공정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포청천은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성찰의 도구로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을 활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백설공주」에 나오는 여왕은 거울을 통해 진실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마법의 거울 앞에서 여왕은 매일 아침마다 묻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냐?” 여왕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고, 「백설공주」의 플롯이 펼쳐지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여왕이 매일 아침마다 거울에 그와 같은 질문을 했던 것은, 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지, 그 진실이 궁금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여왕이 원했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왕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라는 확인이었죠. 그만큼, 원했던 답변이 나오지 않았을 때, 여왕의 분노가 더욱 컸습니다.

이렇게 여왕은 자신의 미모를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인데요. 자신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왕은 거울에 투영되는 이미지, 또는 타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했던 것이죠.

다만 여기서 여왕이 놓친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요. 누가 더 예쁘고, 그렇지 않음을 판단하는 일은 ‘실제로 그러함’을 따지는 진실의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보는 거울이라고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죠. 미의 기준은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에 있을뿐더러, 시대나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죠. 18세기 독일에서의 미인의 기준과 21세기 한국에서의 미인의 기준이 일치하지는 않으니까요.

예전에 어린 강아지를 입양한 적이 있어요. 아직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서툴던 강아지는 거울을 보더니 거울 속 자신을 보고는 놀라서 막 짓기 시작했는데요. 거울 속의 강아지가 자신임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크게 웃었더랬죠.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더 이상 그러지는 않더라고요.

인간의 아기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아기도 처음에는 거울에 비취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만, 곧 익숙해진다는 거죠. 다만, 강아지는 거울 속의 강아지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에 반응을 그만두는 반면, 아기는 거울 속의 아기가 자신임을 서서히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이렇게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기가 거울을 통해 ‘자아(ego)’를 형성하는 과정을 아예 ‘거울 단계(Mirror state)’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거울 속의 자신을 동일화하는 과정에서 자아 형성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자아를 인지하기 무섭게, 인간은 곧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거울 속 모습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괴리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로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집착과 괴로움이 시작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여왕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평생 완성할 수 없는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고전이고 동화 속에 나오는 여왕이지만, 외모에 집착하는 여왕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상당히 닮았죠. 외모에 대한 집착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까요.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의 보급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사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편집해 주는 사진보정앱도 인기가 많습니다. 원래의 모습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이력서에 올리는 사진은 물론 주민등록증과 여권에 쓸 사진도 보정하곤 하죠.

그러면서 여왕이 거울에게 묻듯, 우리는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다른 이들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지고 이미 정해진 답변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매깁니다. 타인의 확인 없이는 자신의 외모와 존재를 확신할 수 없고, 곧 불안에 빠지는 것이죠.

자크 라캉의 분석처럼, 불안은 우리가 거울을 보는 순간으로부터 출발할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은 집안 곳곳에는 물론 휴대용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수없이 외모를 확인하죠. 그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여왕처럼 괴로움에 빠지는 것인데요. 이는 우리가 거울을 통해 진실을 보지 않고, 우리의 욕망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진실을 보여준다는 전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진실을 흐리고 왜곡하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우리의 욕망뿐입니다. 우리는 욕망에 얼룩진 표면을 넘어 거울이 보여주는 참 자아, 진정한 나 자신에 이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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